속삭이는 사회. 1

저자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출판사
교양인 | 2013-09-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조심하라, 이 책을 읽으면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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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사회. 2

저자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출판사
교양인 | 2013-09-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조심하라, 이 책을 읽으면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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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소련 적군이 독일의 심장부로 진군을 시작한다. 그때 프리모 레비는 성홍열에 걸려서 아우슈비츠의 대규모 이동에서 버려졌다. 이후에 극적으로 살아남아 소련군에 구출된다.(이 이야기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참고) 재미있는것은 스탈린시대에 소련의 국민들이 가장 자유를 느낀시기가 바로 이 시기라는 점이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때, 스탈린의 정신나간 체포후 총살과 강제 수용소 유형이 가장 덜했던 시기이며 사람들이 가장 자유를 누렸던 한 시기이다. 전쟁이 그렇게 한것인데 참 웃기지 않는가?

 

과거로 가서 다시 재구성을 해보면 이렇다. 1917이후 볼세비키 혁명이 성공한다. 차르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전시대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러시아사에서 차르시대에 대한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최근에 1903년에 발표한 안톤 체호프의 <벚나무 동산>이라는 희곡을 보면, 이시대에 이미 귀족층이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신흥 귀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희곡의 부유한 귀족의 몰락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런 현상은 동시대 유럽에서도 비슷했던것 같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후에 소련을 보자면... 그럭저럭 공산주의의 형식을 잘 갖추는 듯 하다. 예를 들어 당시 당 간부들은 검소하게 생활했고 부르주아의 핵심 단위로 보았던 가정, 혹은 가족을 중요시 하지 않았다. 공동주택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공산주의 이상도 제법 잘 지켜지는듯 보였다.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산당이라는 유일한 정치 체계는 이해하지만 독재자의 등장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독재자가 왜 필요한것일까?

1928년 이후에 집단 농장화가 시작되면 여러 문제가 생겨났다. 여기서 스탈린의 광기가 출발한듯 하다. 당시 부유한 농민을 체포해서 강제 수용소나 극동의 건설현장으로 유형을 시켰는데.... 그 체포가 참 말그대로 개판이다. 마구잡이로 근거도 없는 경우도 있고 혹은 허위 밀고도 있다. 스탈린은 이후 점점 미치광이가 되었던것 같다. 이런 공포사회, 즉 속삭일 수 밖에 없었던 사회는 스페인 내전 전까지 계속된다. 스페인 내전에서 그 지겨운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말에 신물을 느끼고 무능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련의 헛짓거리에 도망치듯 조지 오웰은 스페인을 빠져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그가 쓴 <1984>를 읽어보면 어쩜 그렇게 날카롭게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잘 묘사했는지. 마치 조지 오웰이 소련에서 망명한 작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조지 오웰은 소련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파시즘, 전체주의 국가로 보았다. 나도 그렇게 보인다. 북한도 사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랑 동떨어진 전체주의 국가로 보인다. 전체주의 국가가 보이는 독재자의 지나친 권력도 똑같고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설정해놓고 그 외부의 적의 공포로 국민을 위협하고 가두고 죽이는 식이 똑같다. 히틀러도 그랬으니깐. 히틀러는 순수혈통을 내새우며 아닌 모든 인종을 위험한 적으로 삼았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더 했다. 그래서 마치 그냥 두면 자신들이 결국 숨막혀 죽을 것이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선동했다. 스탈린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죽고 유형당하고 추방당했던것들은 이런 공포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지 오웰은 <1984>를 통해 소련이라는 사회를 정확히 묘사한 것 같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의 승리였다. 소련은 사실 파시즘이 스페인을 잠식하든 말든 큰 관심은 없었던것 같다. 본토가 공격당한 그게 1941년, 정말 전쟁이 나기전까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웠다. 흔히 여기서는 인민의 적이란 이름을 사용했는데. 그 수많은 인민의 적중에 진짜 적은 얼마나 될까?

 

어쨌든 전쟁시기 스탈린 시대 사람들은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다. 왜냐하면 당이 적이라고 규정한 것들은 실체가 없었으며 억압된 사회에서 감시와 고발로 서로를 믿지못했던 사람들이 전쟁이 터지자 실체의 적을 만났고 불신하던 이웃이 이제는 생사를 같이하는 동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유럽 전역을 진격하면서 외부의 세계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눈으로 봤다. 프리모 레비의 <휴전>은 이 시기에 소련사람들의 모습을 잠깐 볼 수 있다. <휴전>을 읽다보면 소련의 적군들에게 꽤 호감을 느낀다. 독일군과는 다르게 모든 명령체계나 계획이 엉망이고 즉흥적이며 예측할 수 없지만 꽤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고 비인간적이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은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에 살아남은 사람들인데, 가족이나 친척의 일부는 수용소에 갇혀 있었고 억압된 사회에서 자신도 언제 체포될지 몰라서 밤마다 짐을 싸 놓은 사람들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역설적이게도 해방된 느낌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이런 분위기는 잠시 이어지지만 곧 스탈린의 숙청이 또 시작되었고 웃긴건 파시즘이 가져온 반유대주의도 흘러들어왔다. 2차 세계대전 속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것은 갑자기 생긴게 아니라 이미 숨겨져 있다가 때를 맞춰 나타났던것 같다. 그것을 주로 다루진 않았지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전쟁 당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조금 참고 할 수 있다.

스탈린이 1953년에 죽는데, 그 후에도 수용소는 계속 남는다. 수용소는 사실 소련 경제의 핵심이기도 했다. 값싸고 죽어도 상관없는 수많은 죄수들이 그 당시 공산주의의 실패한 소련의 경제를 떠 받치고 있었다. 수용소 이야기는 이 책에 거의 언급이 안되어 있다. 이 책은 수용소를 끌려간 사람들과 남겨진 가족들, 그들을 고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953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수용소에서 풀려난다. 더 많은 사람들은 그후에도 계속 수용소에서 유형당했으며 스탈린의 행위가 고발된 20차 공산당대회 이후에 대규모로 풀려난다. 풀려난 사람들 중에 이미 삶이 망가져서 다시 수용소로 돌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자신의 수용소 경험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나 <수용소군도>같은 책에서 냉정하게 묘사한다.

스탈린 사후에 사람들은 여전히 스탈린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환의의 눈물을 흘렸지만 혹시나 체포될까봐 숨죽여 울기도 했다. 그리고 숙청을 행한 책임자의 일부는 참회했고 더 많은 일부는 부인하거나 과거를 날조했다. 이웃을 고발한 이들도 그 비슷했다.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두 명과 함께 머나먼 시베리아의 알타이 지역으로 추방당했을 때 안토니나 골로비나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아버지는 러시아 북부의 고향마을에서 집단화가 추진 될 때 쿨라크, 즉 부유한 농민으로 체포되어 노동수용소 3년형을 선고받았고, 가족은 재산과 농기구, 가축을 집단농장에 빼앗겼다. 안토니나의 어머니에게 긴 여행에 필요한 옷가디를 챙기라고 고작 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 뒤 골로빈 가족이 대대로 살아온 집은 파괴되었고 나머지 가족들도 뿔뿔히 흩어졌다.(중략) 그리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올랜드 파이지스, 속삭이는 사회 1권, 머릿말 p.21

 

안토니나는 너무 겁이 나서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 맞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다. 한번은 선생님에게 벌을 받았는데 선생님은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너 같은 부류는 인민의 적, 비열한 쿨라크여서 추방당해 마땅해. 너네들 전부 바로 이 자리에서 박멸되면 좋겠다!"라고 고함을 쳤다. 안토니나는 부당함에 치를 떨었고 소리를 질러 항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훨씬 더 큰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고 말았다.

올랜드 파이지스, 속삭이는 사회 1권, 머릿말 p.23

 

온몸이 떨렸다. 나는 누군가가 자신은 쿨라크의 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 여자처럼 자부심을 느끼며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나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생 동안 나는 클라크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노력해 왔다. 그 여자가 그 말을 햇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이 듣지 않았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다.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누군가 들은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폈는가? 두려울 것이 뭐가 있는가? 갑자기 나는 내 두려움이 부끄러워졌다. 그런 다음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쿨라크의 딸이에요." 나는 그때 처음으로 큰 소리로 그 말을 했다. 비록 머리속에서 천 번이나 속삭여왔지만 말이다. 주위에서는 내 말을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황량한 도로에 혼자였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침내 내가 말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강독으로 내려가서 강물에 몸을 씻었다. 그런 다음 우리 부모님을 위해 기도했다. (안토니나의 인터뷰중)

올랜드 파이지스, 속삭이는 사회 2권,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 p.532

 

이 책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일기와 편지, 각종 방대한 기록을 토대로 쓰여졌다. 또 인터뷰도 많다. 지난번에 <안나와디의 아이들>에서도 밝혔지만... 이런류의 책은 정말 대단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조사와 수고를 한두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게 한마디로 대단한 호사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이 책의 기록은 유명인도 있지만 대다수가 일반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나 리얼리즘, 생생함... 그런게 남다르다. 이 책 뒤, 해설에는 조심하라 이 책을 읽으면 울지 않을 수 없다라고 써 있는데... 진짜 천페이지 넘게 읽으면서... 몇번이고 울컥했다. 스탈린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처절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좋은 러시아 작가도 소개 받았다. 이 책에서 그 시대 소설가와 시인의 이야기도 한 테마였다. 그래서 고리키와 솔제니친, 불가코프의 책들도 읽었고 읽어볼 참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약간 씁쓸했던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던 스탈린을 아직도 그리워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라웠다. 하긴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현상은 종종 있고 심지어 우리시대에 우리 곁에도 있으니.... 뭐 놀랍긴 해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것은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이론은 어떨지 모르지만(나는 아직 레닌이나 마르크스를 읽지 않았다) 실제는 모조리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것은 공산주의가 가족을 해체하고 인간을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시켰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는 점이다. 가족이 해체되자 사람들은 삶을 더이상 살아갈 수 없었다. 유형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쓸 수 없었다면, 혹은 다시 만날 날을 꿈꾸지 못했다면 그들은 살아갈 이유가 없었을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체제는 없으며 조금씩 수정되고 보완되야 한다. 잘못된 길을 가면 거기에서 인간의 고통이 시작된다. 민주주의도 그런 고통을 겪었다. 어느 누군가는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완벽하다고 떠든다. 완벽한건 없다. 단지 다른 체제보다 조금 더 나았던것 뿐이다. 그래서 잘못된 체제와 미치광이 지도자, 굽신거리는 정치인과 관료, 속삭이는 사람들이 이 거대한 비극을 나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울었다. 그건 이 모순된 체제 안에서 개인이 어떤 감정을 느꼈느지 희미하게나마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2. 6. 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