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모임 최고의 책은…
역시 아무래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아닐까요?
펼치기 전의 그 두근거림을 당할만한 책이 있겠어요?

2년간 해온 책모임을 결산하면서 짧은 단상을 펼쳐 봅니다

열하일기, 박지원
저는 청소년용 그림이 그려진 열하일기를 십대 적 한 권짜리로 읽었더랬어요. 이 책은 이번에 새로 나온 완역판이었는데 옛날의 그것과 꽤 달랐어요. 그런데 아주 좋았어요. 중간 중간 다른 분들이 파고드는 부분도 좋았고요. 책을 여럿이 같이 읽는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어요. 내겐 아주 당연한 것이 어떤 분에겐 전혀 생소하다는 것도 놀라웠구요, 다른 분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제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도 있어서 좋았어요. 이걸 보니까 두만강에 가보고 싶어졌고, 중국의 자금성이 보고 싶어졌어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가 보고 싶더라구요.
아참, 박지원씨는 정말 글을 잘 씁니다.

고양이의 지구의, 아키야마 미즈히토
다른 분들이 진짜 괴로워했던 라이트노벨이에요. 하드SF라고 분류하기는 애매하고 가벼운 SF쪽으로 분류할 수 있겠네요. 저는 꽤 좋았어요. 고양이 형태의 유사인간-사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갖고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지만 고양이의 성질을 부여해놔서 이 작가가 진짜 고양이를 좋아하든지 고양이에 관심이 많든가 하구나 싶었어요. 전 고양이에 아무 관심이 없어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다른 두 분이 보면 좋아하겠다 싶었는데 전혀 아니더라구요-과 지구 그리고 달과 유사한 생태계에서 이루어지지 못할 꿈을 좇는 모험자의 이야기에요.
사실 작가해설을 보고서야 컨셉을 이해하기 쉽다고 하면 이미 그 작품은 작품 자체로선 좀 망한거죠. 격투기 선수가 신처럼 대우받아요. 뛰어난 격투기 선수가 대결에서 우승하고 추장 같은 권력을 얻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격투기 선수가 여기 있어요.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검은 새끼고양이 같은 놈에게 져 버렸어요. 그런데 그 검은 새끼고양이 놈은 자신과의 결투엔 흥미가 없어요. 대신 뭐 달나라에 가겠다느니 로켓이 어쩌구 하고 헛소릴 해요. 그래서 이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격투기 선수 군은 야이 이놈아 난 가짜 추장이야 니가 진정한 추장이야 하고 버럭버럭 진정한 승부를 가리자고 팡팡 뛰죠. 그런데 저 새끼고양인 관심이 없어…

아 진짜 재밌다고요. 난 재밌게 읽었는데! 끝까지 읽으면 재밌어요! 진짜로.

번역이 좀 일본어투긴 했어요. 탁탁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에요. 그래도 꽤 좋답니다.

경도, 데이바 소벨
너무 어려웠어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제 과학 지식이 부족했어요.
다시 봐도 어려웠어요. 이건 정말 과학적 지식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읽을 수 있는 듯.
물리학 박사하는 언니가 쉽고 재밌다고 추천해 준 엘리건트 유니버스인가가
무시무시하게 어려웠던 기억이 났습니다.
책은 예뻤어요. 중간 중간 시계 이야기 같은 건 좋았어요.

화이트 타이거, 아라빈드 타이가
어느순간 이런 류의 인도 이야기들에 익숙해져버렸어요. 실제 인도에 다녀오신 람님 이야기와 함께 들으니 흥미로웠어요. 저로서는 이 이야기를 왜 추천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숙제책이 아니었다면 볼 일이 없었을 류의 책입니다. 좋은 점도 있었어요. 씁쓸한 점도 있었는데, 음, 저로서는 흥미 없는 분야의 그저 그런 책이었어요.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일곱 번쯤 다시 읽었는데 다시 읽을 때마다 찌릿해요. 무시무시한 책입니다. 이런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어요.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니지만 재미’도’ 있다는 게 대단합니다. 다시 읽어야겠어요.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정치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해야 하는데 그것까지 알아보고 싶지 않더라구요. 읽는 내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엄청나게 편식 읽기를 해왔다는 걸 알았어요. 조지 오웰의 다른 책들, 1984년이나 동물 농장은 재미있었으나 이 글은 매우 재미없었습니다. 전 동물 농장이 소설치곤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에 비하면 아주 양반이었어요.

7년의 밤, 정유정
지릿지릿하고 놀랍고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흡입되어 순식간에 읽어 버렸어요. 내 삶의 한 시간 반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시골마을에서 정말 일어날 법한 일인데, 이런 류의 한국 소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어색하지 않았어요. 소름끼치고 공포스러웠어요. 실감나는 책이었습니다.

북학의, 박제가
이런 류의 책들을 매우 좋아해요. 제가 선정했지만 선정될 줄은 몰랐어요. 짙은 갈색 표지의 이 책이 제 책장에 꽂혀지려면 숙제책이었다 싶은 핑계가 필요했는데 잘 됐어요.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어요. 검은 대륙 같이 어떤 시점, 어느 장소 제가 전혀 모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줄줄 나열되어 있고,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소소하게 늘어놓는 것들이 좋아요.


<갈매기>,<벚나무 동산> 안톤 체호프
희곡은 셰익스피어 말고는 처음 읽었어요. 아! 아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도 읽었네요. 어쨌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대화가 줄줄줄 있는데 무대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어요. 같이들 소리내어 읽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발제자가 나타나지 않는 책모임은 슬프죠.

대표 단편선집, 손창섭
이 사람 글 진짜 충격적이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죠?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덫으로 콱 잡아서 생생하게 포착했어요. 무슨 살아 날뛰는 쥐가 쥐덫에 갇혀 있는 거, 그걸 통째로 내 눈앞에 들이민 느낌이에요. 멋집니다. 이런 좋은 작가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류의 단편 매우 좋아합니다. 추천받습니다.

콘티키, 소르 헤이에르달
남자들이 배타고 멀리 가는 이야기. 지금 다시 봐도 두근거립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라 막연하게 뗏목에 대한 친근감만 있어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인종차별적’ 언어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거. 신기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서 다르게 읽어요. 그래도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미국민중사, 하워드 진
노예 해방 등에 대한 다른 시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런 시각은 처음 봤어요. 제가 정말로 모르는 게 많았구나 싶었습니다. 다만 원래의 미국 역사적 시각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어어 팔랑팔랑 하면서 봤다는 게 아쉽습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매우 추천받아서 억지로 읽은 책이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철학책은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데 너무 후루룩 읽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저 이 모임 안 나갔죠.. 죄송합니다. 내년엔 개근을…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저는 사실 이 책보다 이 작가는 <둠즈데이 북>을 더 추천하고 싶습니다. 진짜 좋아요. 오디오북도 괜찮고요. 물론 이 책도 아주, 아주, 좋습니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진 리스
이건 정말로 제가 읽을 일이 없던 책이었는데요. 저도 누군가 읽는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아름다운 섬에 있는 하얀 저택에서 빛바랜 드레스를 입은 아리따운 백인 아가씨가 흑인 유모의 시중을 받으며 꿈꾸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곧 화재로 끝나버리고요. 결말도 슬펐습니다. 제인 에어 자체는 제가 그리 좋아하는 책이 아닙니다. 제인 에어는 그 남자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리고, 그 미친 여자에게도 삶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진 리스씨의 결단도 좋습니다. 이런 거 좋아요. 아참, 제인 에어가 좋다면 제인 에어 납치사건도 읽어보세요. 그건 이 작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인 에어를 썰고 자르고 참견합니다. 괜찮아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휴대용 음악기기등에 둘러싸여있는 자신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좋았습니다. 한 편 한 편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생각을 해야 했거든요. 나는 이랬구나. 당신은 그렇게 보고 있었구나. 하고. 이 사람의 사고는 정말로 대단합니다. 좋았어요.

엘저넌에게 꽃을(구:빵가게 찰리의 행복 어쩌구), 대니얼 키스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와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맞아요. 정말 다른 형태의 패러랠 월드란 느낌입니다. 아참, 테드 창의 단편선중에 있는 작품이 있는데 뇌의 급작스러운 발전에 대한 내용이거든요. 그거도 좋아요.

저는 가끔 이 책으로 돌아옵니다. 일년에 두 번 정도는 다시 읽는 듯 해요.

어렸을 땐 아마 이걸 읽으면서 난 더 나아져야 해, 더 배워야 해, 찰리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해, 하고 생각했던 듯 싶어요.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책 속으로 한 걸음 성큼 걸어들어가서, 찰리와 함께 철자를 익히고 사랑을 시작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그리고 끝내고 돌아옵니다.
바보처럼 사는 게 무어 그리 나쁜가요.

조선언문실록, 정주리&시정곤
아 전 정말 이 책이 선정되지 않기를 바랬건만 여러분들이 골라버리셨습니다. 다음엔 내가 선정되지 않길 바랬던 책-_-;은 절대 목록에 올려놓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양반 얘기 조금 나오고 뭔가, 이야기가 없어요. 책에. 음. 전 이야기가 좋아요.
제가 그때 추천했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이게 진짜 괜찮다니까요. 이거 좀 읽자구요. 으으.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요.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뭐라고 해야하지,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의 1권 같아요.
막 엉뚱한 일이 점점 더 커지면서 점점 더 우스운 거요. 중간 중간 심각하기도 한데, 기본적으로는 재미있고 유쾌한 거. 사실은 엄청 현실적인 일인데 개그스럽게 얘기하는 거에요. 어린 흑인 여자아이가 너랑 자보겠다고 하는 백인 남자에게 다리에 가위를 꽂아줄까 하는 따위를 농담을 섞어 쓰다니 대단해요. 그리고 실제로 웃겨요.
스웨덴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스웨덴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 꽤 있어요. 스웨덴인이 아니라도 대체적으로 재미있긴 해요. 뭔가 이너 서클만의 이야기를 바깥에서 슬쩍 엿본 느낌이었어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켄 키지
저는 이게 제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한 책이어서 읽으면서 끔찍했어요. 두렵기도 하고. 음, 엄청 잘 썼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그분이 실패했단 생각을 했어요. 규칙을 이용한 탈출까진 좋았는데, 나중에 제대로 머릴 못 굴렸군 싶더라구요. 결말이 제 맘에 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모든 책들의 결말이 제 맘에 들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안 그래요?

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
이 책을 읽는 것보다 말랄라의 인터뷰 같은 걸 유투브 같은 데서 찾아서 보는 편이 훨씬 낫겠어요. 뭘 말하고 싶은 책인지 영 모르겠네요. 파키스탄 소녀가 고향 이야길 하는 부분은 처음 조금이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열심히 설득하려는 것 같았어요. 말은 맞아요. 좋은 말이에요. 소녀들도 공부를 할 수 있어야죠. 그런데 그녀가 지금 영국에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져요. 아니 그리고 넌 왜 기증받은 돈으로 가구를 사고 아버지가 땅을 사고 한 건지? 그런 얘기가 책 중간에 있어서 어이가 없었어요. 학교 세우라고 기증한 돈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너무 솔직하게 써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어렸을 적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르긴 했어요. 그래도 그 놀라움과 경이감은 여전했어요. 이 책을 읽는다기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나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어요. 이 사람이 마구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 책도 읽어 보고 싶어요.
그렇지만 확실히 채식주의자에 대해서 소수니까 언급할 필요없어 하는 걸 난 채식주의자가 아니니까 어엉 하고 넘어갔는데 다른 분 말씀을 들어보니 이 사람 의견이 굉장히 독선적인 데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같이 읽기가 이래서 좋아요. 그렇죠?

이건 정식 책은 아니지만.

바람의 화원, 이정명
과연 드라마감이더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읽고 우리가 이야기할 내용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일단 숙제책 추천은 안 했어요. 으잉 이 연애 라인은 뭐지 싶었는데 결론이 그런 거였어요. 아하하.

by 하나씨 2015. 2. 11.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