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저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05-04-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산업사회가 낳은 인간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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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책을 한권 읽으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인기 없는 에세이>를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여태 읽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독서 모임 숙제책이라, 전에도 말했듯이 일단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은 강제로 읽게 된다. 그 책이 내 취향의 책이 아니더라도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고 모임에서 내가 뭘 느꼈는지 얘기하려면 읽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억지로 읽는건 아니다. 다만, 읽을 책이 너무 많고 내가 책을 읽는 속도가 무척 느리며, 또 나의 독서의 범위가 비좁기 때문에, 이런 강제적인 읽기가 참 유익할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렇다. 러셀의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읽지 못했던것은 철학이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릴 때 주변에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얘기하면서 그런 편견이 생긴것 같다. 그때 짧은 생각으론 철학이란게 별 시덥지 않은 것을 괜히 부풀려 복잡하게 생각하는 말장난 정도로 여겼던것 같다. 편견은 그대로 두면 둘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서 나중엔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철학에 관련된 책은 기피했던것 같다. 근데 막상 읽어보니 러셀의 책은, 물론 철학적인 부분도 꽤 나와서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철학자의 책이라기 보다는 학자로써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약간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초판이 오래된 판본이고 개정판에서 얼마나 다듬었는지는 모르나 지나친 직역 때문인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지... 번역투의 문장이 너무 많았고 어떤 문장은 몇번을 읽어야 겨우 이해할 정도로 아주 비효율적이였다. 사실 번역에 대한 생각은 다양할 수 있다. 그래서 원문에 가까운, 직역을 선호할 수도 있어서 지나치게 우리말로 의역을 한것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책에 따라 다른데, 아쉬운건 러셀의 문장이 아주 좋은데, 그런 좋은 문장을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아무리 직역에 중점을 둔다고 해도 한국 사람이 읽는 책이고 그것이 국어 문장인데 한두번 읽었을 때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어도 외국어도 아닌, 전혀 다른, 정의조차 할 수 없는 괴상망측한 언어가 아닐까? 그래서 번역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번역은 참 아쉽다.

 

러셀(1872-1970)의 글을 읽다보니 지난해 읽었던 조지 오웰(1903-1950)의 두 권의 책, 에세이집과 르포르타주가 연상되었다. 두 사람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고, 둘 다 엄청난 양의 원고를 남겼으며, 조지 오웰의 경우 우리는 소설만 썼다고 생각하지만 엄청난 양의 사설과 에세이를 남겼다. 번역이 안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둘 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며, 또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재미난 점은 그러면서도 약간 다른 점이라면 러셀은 약간 더 이상적인 느낌이 드는데, 러셀의 꿈꾸는 세상은 약간 이상적이며, 조금은 이론적이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그에 비해 조지 오웰은 좀 더 현실적이며 비판적이다. 물론 러셀도 비판적이지만 오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건 단순한 추측이지만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 들어,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도 러셀의 에세이는 번역이 무척 많이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읽어 볼 기회가 많을것 같다. (상대적으로 조지 오웰의 에세이 번역은 빈약하다. 사실 러셀도 글을 잘 쓰지만.... 조지 오웰은 전업작가니...ㅎㅎㅎ)

 

책의 표제작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사실 제목과 글 내용은 그 느낌이 무척 다르다. 나는 제목만 보았을 때 여유를 갖고 살자라는 철학자의 강의 정도 인줄 알았는데, 우리 시대에 악덕한 기업이 왜 그렇게 부를 축척하는지 또 왜 보통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지에 대한 글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도중 내가 놀란것은 최근에 다양한 독서를 하면서 정리가 안되었던 생각들을 이 짧은 글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역시 아는게 많은 사람의 글을 다르구나 그런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최근에 무슨무슨 강연이나 멘토니 힐링이니 하는것과 관련된 책을 엄청 싫어했다. 어느정도냐면 그런 책은 절대 볼 생각도 안했다. 왜 그런가 하면, 나는 그런 요약이 뻔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면도 있고 아닌 면도 있는것 같다. 왜냐하면 어떤 진리든 그것은 단순하지 않으며, 그렇게 짧은 시간에 깨우칠 수도 없으며 길고 다양한 사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유는 폭넓은 독서, 또 세상이나 사물, 사건을 바라보는 직관에서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모든 책들에서 우리는 진실을 발견한다. 어떤 형태든, 비소설은 물론이고 소설책을 읽으면서도 발견한다. 최근에 그렇게 유행을 타는 인문학이 인문학책에서만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소설책에서도 당연히 얻고 심지어 동물학책에서도 역사책에서도 각종 책에서 얻을 수 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읽고 경험한 후에나 우리는 진실에 접근하고 감동을 할 수 있는데... 요즘에는 감동했다는 말이 너무 편하고 너무 무분별하다. 아무때나 튀어나고 아무때나 치유를 했다는 말이 나오며 감동을 했다는 말을 하고 진실에 접근했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인기 있는 한 사람에 의존하는게 싫어서, 나는 그런 책을 읽지 않았다. 물론 그런 책을 쓴 사람은 나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더 폭넓은 사유를 하고 뭐든 더 뛰어나기 때문에, 그들이 쓴 책을 읽는 것은 분명히 유익할 것이다. 러셀의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지 거기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 러셀의 글안에 모든 주장을 내가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며 대체로 수긍하지만 어떤것은 나와 생각이 다들 수 있는데, 요즘은 너무 맹목적이지 않나 싶다. 앞서 말했지만... 다양한 책 속에 진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것을 통해 올바른 사유를 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못하는 것이다. 즉석요리를 사서 먹는것이 진짜 요리를 하는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스님들이 부처의 말에 감동하고 그 말들을 외우고 또 외운다고 해도 진리를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러셀의 다른 책을 또 읽어 볼 작정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가 마주하는 부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좋은 대답이 될것 같다. 꼭 정치, 사회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이 철학자의 글은 사소한 것들도 아주 흥미롭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2. 4.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