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발리 BOOK + 내 손으로 NOTE

저자
이다 지음
출판사
NEWRUN | 2014-12-10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를 들여다보다!일러스트레이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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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최근에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그게 두달은 넘은것 같은데, 겨우겨우 독서 모임 때문에 한달에 책 한권을 읽는 정도였다. 당연히 오랜만에 독서 모임과 무관하게 읽은 책이며, 올해의 첫 책이다. 또 우연하게도, 어제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 발리가 나온다. 마치 그 느낌이, 꼭 쇼생크 탈출에서 마지막 장면처럼 낙원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난 발리에 대해서 잘 몰랐고, 인도네시아도 몰랐고 관련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전혀 아는게 없었다. 게다가 나는 기행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우연히 <열하일기>를 읽고 단숨에 기행문에 매료되었다. 전에는 기행문이라는 건 내가 거기에 가지 않으면 읽어볼 필요가 없는 책 정도로 취급했다. 난 여행을 많이 안하니깐 당연히 기행문을 읽을 생각을 안해봤다. 아마도 내가 여행을 좀 즐긴다고 해도 기행문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왜 전자제품 사면 설명서 안읽어보고 일단 몰라도 무작정 써보는 타입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근데 좋은 기행문은 그런 생각을 변하게 했다. 기행문이란 여행에서 느낀 것들, 그것이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그것을 산문 형식으로 쓴 것인데, 꼭 여행의 기록으로만 얘기할 수 없다. 그 안엔 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물론 모든 기행문이 내 구미에 맞는 건 아니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를 제외하곤 요즘 기행문이라는 것이 그렇게 좋아보이질 않았다. 요즘엔 블로그에 올라오는 기행문조차도 너무 사진이 많다. 한마디로 디지털 사진의 과잉 시대라서 그런지, 생각해보면 나도 포스팅 하기전에 늘 사진없이 글을 올리는 건 좀 뭔가 허전해서, 어떻게든 사진을 준비한다. 마치 짤방없이 글을 올리면 큰일 나는 것처럼, 최근 여행의 기록들을 보면 온통 사진뿐인데, 사진은 참 편하고 사실적이긴 하지만, 그 만큼 재미는 없다. (사진 자체가 재미없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너무 흔해서 그럴꺼다. 영국의 근대회회사를 읽다보면 풍경화가 발전한 것이, 그때는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풍경화가 상업적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낯선 곳의 이국적인 풍경, 주로 자연풍광을 사실적으로 그린것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근데 따지고 보면 여행의 기록을 동영상으로 남기든 사진으로 남기든, 글로 남기든 그림으로 남기든, 각각의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기록적인 면에선 다 똑같다. 물론 여기서 조금씩 차이는 있다. 각각의 형식에서 저마다 구사하는 능력도 다를것이고 그림을 통해서 포착해내는 것이 사진보다 뛰어난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있을것이고 기록하지 않고 오히려 그냥 갔다와서 사람들에게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더 잘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방식은 사실 상관없다. 단지 요즘에 기행의 기록이 사진이 너무 많아서 흔해빠지고 지루하다는 것일 뿐이다. 그 안에서도 물론 옥석은 있을 것이다. <내 손으로 발리>를 펴 들었을 때 놀란 점은 모두 손으로 쓴 책이란 점이다. 마치 중세시대 부자들을 위해 기도서 같은것과 비슷하다. 거기에는 손으로 쓴 글씨와 정교한 장식이 그려졌고 더 비싼 책에는 화려한 채색화까지 그려져 있다. 예전에 딱한번 작가의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몰스킨 노트에 그려진 홍콩 풍경들을 본적이 있는데, 나는 완전히 거기에 매료되었다. 하필 나도 전에 홍콩을 갔다왔는데, 수백장의 흑백사진을 갖고 돌아왔고, 생각해보면 나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니였다. 만약 그 때 내가 짧은 홍콩 여행의 기록을 남겨야 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사진을 포기하고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내가 사진보다 글을 더 잘 쓰기 때문이다.(물론 잘쓴다라는 뜻은 상대적인 의미다.) 어쨌든 이 책은 글자가 번진것까지 인쇄되어 있어서... 책을 계속 읽다보면 마치 내가 길을 걸어다가다 우연히 길에 떨어진 <발리 여행의 기록을 상세하게 적은 노트>를 줏어서 나도 모르게 읽어본 그런 느낌이 든다. 이것은 사실 책의 본질이라고 할만한다. 작가는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든, 그런 방식을 통해서 내가 느낀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캔버스나 필름, 혹은 원고에 담겨지고 다시 그것은 가공된다. 수정을 하고 보정을 보며, 전시를 위해 액자에 넣어지고 조명을 설치한다. 인쇄를 하기 위해 타이포작업을 하고 편집을 하고 갖가지 과정을 통해서 사진들에게 보여진다. 그러나 이 책은 후반부에 어떤 작업이 생략되어 있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생략되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종의 속임수라고 하면 속임수인데... 작가가 작성한 노트의 원고의 초고 상태를 수정없이(수정없는 것처럼) 펼쳐 보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언뜻 새로울것이 없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또 굉장히 새롭게 느껴진다.

 

글을 쓰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편안하다. 종종 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할때도 늘 형식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단순히 잡담하는게 아니라 좀 더 형식을 갖추고 써야 할 때는 어려움을 느끼는데, 아무래도 글쓰기라는게 좀 그런면이 있다. 소설을 쓸 때도 소설의 형식에 벗어나지 않지만 좀 더 참신하고 매끄럽게 쓰려고 노력한다. 서평도 그렇고 모든 글에는 그런게 있다. 책 앞 페이지의 지도 그림을 보면, 기행문의 형식을 지킨것 같지만, 곳곳에 산문들은 굉장히 자유롭다. 발리 역사 요약이나 정보 요약, 쇼핑한 물품들, 음식 소개, 등등.. 일기 형식 중간중간에 자유롭게 배열되어 있는데, 읽기 편하다. 기행은 사실 대부분의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하는게 보통이고 이 책도 그 형식을 따른다. 다만 중간 중간 다양한 주제들을 끼워넣었다. 재미난건 열하일기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열하일기도 일기처럼 기록들을 서술하다가 갑자기 책목록이 나오고 소설이 나오고 골동품 리스트가 등장한다. 이런건 사실 기행의 기록과 큰 상관은 없지만 매우 흥미롭다. 그런게 빠졌다면 왠지 아쉽지 않았을까? 어쩌면 기행산문의 독특한 형식일지도 모르겠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나는 기행문을 읽지 않았다. 예컨데 발리에 대한 기행문을 읽는것보다 발리에 대한 역사책을 읽는걸 더 선호했다. 근데 잘 써진 기행문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점은 기행문이 단순히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읽는 책이 아니라, 그 여행에서 작가가 뭘 보고 뭘 느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다른 산문이나 소설과 맥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 소설도 그렇지만, 작가가 허구를 통해서 자신이 뭘 보고 뭘 느꼈는지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똑같다. 좋은 기행문을 읽으면 나도 기행문을 한번 써보고 싶다. 문제는 기행문을 쓰는 문제라기보다는 여행, 즉 낯선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런 노력을 기행문에선 요구하기 때문에, 그건 쉽지 않을 것같다. 앞서 내가 요즘 여행의 기록은 디지털 사진의 과잉이다라고 한것은 단순히 사진이라는 매체로 기행을 기록한 것을 비판한것이 아니라 그 기록에는 작가가 뭘 봤는지 뭘 느꼈는지 와닿는게 없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발리>라는 책은 글과 드로잉을 통해서 작가가 발리라는 낯선 여행지에서 뭘 보고 뭘 느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 그 방식은 작가가 원했던 방식이라는 점이 받아들이는 독자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 31. 1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