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아르하입니다. 워낙 서평 게시판이 썰렁해서 예전에 써둔 서평 몇개를 올립니다.^^ 이방인은 독서모임에서도 다뤘으니깐요.

이방인을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다 읽고 나서 적잖은 충격을 받고 그 뒤로 카뮈의 모든 소설을 탐독……. 이렇게 나갈 줄 알았죠?ㅋㅋㅋㅋ 아.. 죄송합니다. 서평에 이런 장난질을…. 모처럼 진지하게 나갔는데….

사실 저는 그런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어릴 때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건 문학적인 어떤 충격이라기보단 일인칭 시점으로 쓴 그 단편이 몽땅 사실로 알고, 순진하게 말에요. 어쨌든 그 모든 걸 사실로 받아들이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감이 생겨서 충격을 받았던 거죠. <어셔 가의 몰락>같은 작품에선 정말 무서웠죠게다가 <아몬티야도 술통>에선 어찌나 적의로 똘똘 뭉쳐졌는지 놀라고 신기하기까지 했죠. 도대체 이름난 문학작품이란 게 이렇게 증오와 적의로 뭉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아 그래서 이방인은요? 중학교 1학년코 찔찔 흘리고 다닐 때 읽긴 읽었습니다. 방학 때 집에서 따분하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오후 방바닥에 포켓북 형태의 세계문학 전집이 몇 권 있거든요. 아마도 누나가 산 것인지 빌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톨스토이 장편 한 권이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맥베스> 합본이 있었고요. 그리고 <이방인>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엔 <이방인>말고 뒤에 뭔가 다른 작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톨스토이는 읽자마자 졸음이 쏟아져서 관뒀습니다. 뒤에 <햄릿>은 읽고 <맥베스>초반만 읽었죠. 그리고 <이방인>은 다 읽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기억은 납니다. 첫 장부터 어머니가 죽어 장식에 가는 장면이 기억나고 살인을 하고 감옥에서 사제에게 분노하며 뭐라 뭐라 장황하게 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아마도 그땐 어렸기 때문에 도무지 이 소설을 이해하기 어려웠죠. 저는 그때 큰누나가 선물로 사준 <꼬마 니꼴라>를 정말 재미나게 읽고 있었거든요.

 

뭐 어쨌든 코 찔찔 중학생이 읽기에는 퍽이나 어려운 소설이겠죠. 그나마 짧아서 다 읽었던 것 같은데, 읽고 나서 제가 기억하는 건 작가가 종교를 무척 싫어하는구나. 그리고 주인공이 정말 짜증 나는 놈이란 점과. 또 그리고 이 책은 주말마다 교회 가는 친구들이 읽으면 좋아하지 않겠구나. 정도였죠. 그리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지금은 또 전혀 다르게 느껴지네요.

 

저는 처음에 주인공을 오해했던 게그 옛날 읽고 느낀 것처럼 주인공의 성격에 짜증이 나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유부단하게 보였거든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마지못해 대답하고 이렇다저렇다 줏대가 없어 보였는데 사실 지금 다시 보니, 특히나 2부에서 그가 재판을 받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그는 우유부단한 것이 아니라 단 한마디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독특한 인간이더군요. 예를 들어 여자친구 마리가 결혼하자고 하자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하기를 원한다면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대답이 참 많은데…. 심지어 자신을 사형에 처해줄 것을 요구하는 검사의 말조차도 어느 부분에서 맞는 말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저는 이 사람이 무신경하며, 우유부단하고 뭐든지 귀찮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거죠. 그는 보통 사람보다 더 섬세하며(어떤 면에서는요) 우유부단하지 않으며 단지 거짓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마치 코미디 영화에서 아들의 소원으로 거짓말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처럼요작가는 주인공 소는 죽는 한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 그 자체이며, 그 거짓말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 적응해나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각주:1]

설명이 필요없는 대목이죠. 우리는 숱한 거짓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앞서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할 수는 있다고 말한 뫼르소의 말을 떠올려보세요. 우리는 그 말이 괴상하게 들리죠.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가 아닙니다. 왜 마리와 있으면 즐겁고 성욕을 느끼고 결혼을 해도 괜찮다 싶으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까? 그냥 사랑해라고 말하고, 그게 거짓말이라고 해도 혹은 앞으로 사랑하면 되니깐 그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말을 수도 없이 합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이 사회에 적응해나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은 결코 잘못도 아니며 범죄가 아닙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그건 그냥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창에게 반갑다고 악수를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반갑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거죠. 예전에 저는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했던 것이 아니라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것 같네요.

 

또 뫼르소가 정말 살인을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더군요. 사실 정말 살인을 하긴 했지요. 뫼르소는 태양 때문이라고 말해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요. 사실 왜 그를 죽였는지 저도 잘 모르겠더군요. 근데 그게 중요할까요? 재판 과정을 쭉 지켜보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뫼르소가 아랍인 남자를 총으로 쏴 죽였는가? 그렇다면 그게 계획된 일인가 우연한 일인가? 이런 의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뫼르소가 어머니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렸는가? 마지막까지 어머니의 시신을 왜 보려 하지 않았는가? 불량한 친구는 왜 사귀었는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왜 마리와 수영을 하고 영화를 보고, 그것도 하필 왜 저속한 희극 영화였던가! 그리고 그날 밤 마리와 잤는가? 그런 게 갑자기 더 중요해졌죠. 재판에서 검사는 뫼르소가 범죄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매장했으므로 유죄라 주장합니다. 뫼르소는 어머니가 죽은 다음 달 여자를 만나 수영을 하고 희극영화를 보며 시시덕거리며 그런 엄숙한 날 섹스를 하는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그의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더는 논의할 가치가 없더란 식으로 얘기하죠. 그러니깐 보편적인 사회 규범을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검사는 더 노골적으로 얘기합니다. 평소에 그가 그런 사회 규범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법정에 세울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그러나 그는 살인했으므로 그 살인 이후에는 그가 지난날 했던 모든 일은 다르게 해석이 되는 것이죠.

작가는 이런 재판의 세계란 부르주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각주:2] 이 말에 공감을 하든 안 하든, 저는 재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재판을 지켜보면 늘 그 당시의 정황이 물적 증거가 범죄를 말해주는 것만큼 그 사람의 과거 행적, 주변 사람과의 관계들이 모조리 까발려지고 그것이 마지막 선고의 어떤 영향을 주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것은 좀 지나친 작가의 해석이 아닐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한편으로 그 시대에 살았던 작가라면 말입니다. 적어도 제국주의의 도래를 보고 또 천박한 자본주의가 생긴것을 보았고 또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행했던 그런 구역질 나는 짓거리를 보았고 전체주의 탈을 쓴 공산주의가 어떤 생겨났는지 지켜보았더라면…. 어쩌면 뫼르쇠같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인물에 대한 경외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결말에 가서 그는 사형수로 인식되진 않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는 오히려 예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말에 종교인들이 항의할 수도 있겠는데…. (예수가 한 남자를 총으로 쏴죽인 게 아니니깐요.) 이 부분은 좀 이해해주셨으면 하네요. 저는 종교인이 아니라 온전히 종교인의 입장으로 이 부분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느낀 건 예수는 자신이 죽음을 당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심지어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말하죠그런 징후는 예수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으며 자신에 닥쳐올 죽음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는 죽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죠. 부활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가 죽음을 선택한 행위입니다. 물론 예수는 인간이 인간을 뛰어넘은 것이며 뫼르소는 그냥 한 인간일 뿐이죠.

 

이방인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면서 뫼르소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가장 삶으로 충만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다는 것을 그가 이해했다는 부분에서 잘 나타납니다이건 굉장히 역설적인데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글쎄요. 저도 서평을 쓰려고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 뭔가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도는 어떤 것이 있는데 끄집어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는 거죠.

모르겠습니다. 저는 책 뒤에 엄청 길게 쓴 해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건 말 그대로 그 해설을 쓴 사람의 이해이고 생각일 뿐이지 제가 그걸 읽는다고 이해에 도움은 되겠지만, 저의 생각이 되는 건 아니니깐요. 이방인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 같아요. 사제가 말했던 우리는 모두 사형 날을 받아 둔 사형수이고 뫼르소는 세상의 모든 거짓말에 대한 혐오의 상징이며 또 마지막 결말에선 역설적이게도 그래도 우리가 삶을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죽고 사회 속에 속하고 부조리 안에 사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한마디로 그것은 인간의 삶 자체죠.

 

결론은 조지 오웰의 소설을 읽을 때,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좀 읽고 또 조지 오웰이 살았던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많아질수록 그의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소설 <이방인>을 더 잘 이해하려면 작가와 그 작가의 시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카뮈의 소설을 더 읽어볼 것, 그가 쓴 에세이든, 서신이든, 그 어떤 글이든 좀 읽어 볼 것.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다양한 이야기는 계속 읽고 있죠. 거기에 카뮈의 다른 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1. 출처 독일 독자가 알베르 카뮈에게 <이방인>을 각색해 보겠다는 제한에 대한 작가의 서신, 이방인(민음사), 부록-이방인에 대한 편지 [본문으로]
  2. 출처 독일 독자가 알베르 카뮈에게 <이방인>을 각색해 보겠다는 제한에 대한 작가의 서신, 이방인(민음사), 부록-이방인에 대한 편지 [본문으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1. 3.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