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워드 (지은이) | 김병화 (옮긴이) | 어크로스 | 2015-10-21 | 원제 Adventures in Stationery: A Journey Through Your Pencil Case (2014년)

* 아르하입니다. 따끈한 새책 서평 올려봅니다.ㅎㅎㅎㅎ

 

이 책은 소위 시쳇말로 문덕을 위한 책이죠. 표지를 딱 봐도 그런데... 여기서 언급되는 유명 문방구들을 써봤거나 가지고 있다면 당신도 문덕일겁니다. 예를 들어 몰스킨이나 파커나 펠리칸 만년필, ​블랙윙이나 스타빌로 연필이라던가, 트로닷 스템프라던가, 각종 포스트잇같은거요. 우리가 흔하게 쓰는 문구들인데 보통은 관심이 없죠. 이런 형태의, 이런 방식의 문구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런 이야기인데, 저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문구에 관심이 많거든요. 저는 책장으로 둘러쌓인 서점이나 음반샵, 비디오가게(지금은 사라졌지만요.) 가판대 가득 문구가 가득 진열된 문방구나 화방에 들어가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그 안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죠.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예쁜건 하나씩 사 모우는 것도 좋아합니다. 문구를 사는 건 최초 필요에 의해서였죠. 그것은 대부분 학생 시절에, 혹은 사무 업무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사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쓸모가 없는데도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연필과 각종 펜들, 샤프펜슬, 홀더펜, 만년필과 각종 볼펜, 붓펜, 각종 리필심들과 딸려서 사야 하는 것들, 예를 들어 연필깎이와 필통, 잉크등등... 심지어는 그냥 예쁘다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데 사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좋아하는 물건들의 역사에 관한 책이 없었죠. 굳이 알려고 해도 웹검색을 하는 수 밖에 없는데... 외국엔 이런 정보들이 좀 있긴 하지만, 한국웹에는 문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떠도는 소문인데, 대부분 잘못되었거나 혹은 제조사가 꾸며낸 이야기가 많았죠. 이 책에서도 제조사가 꾸며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으로 몰스킨과 블랙윙이 그렇죠.

사실 덕후라는 용어는 지금은 조금 더 편안한 표현이 되었고 긍정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조롱의 의미였고 지금도 사실 조금은 조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은 덕후임을 스스로 자체하기도 하죠. 문구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면, 뭘 그렇게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냐고 하는 사람이 지금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글을 쓸때도 왜 그런 사소한 주제로 글을 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거든요. 그럼 사소하지 않은 주제는 뭘까요? 요즘엔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린것 같아서 이런 물음에 해답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그럼 정치적인 이야기(물론 정치는 중요합니다.) 혹은 사회, 경제, 그것도 아니면 연예인 가십이라도 다뤄야 할까요? 꼭 문구가 아니더라도 그게 맛집이든 차나 커피든, 혹은 화장품이든 혹은 뭐든 그게 사소한가 아닌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것에 얼마나 내가 흥미를 느끼고 즐거워 하는게 중요하고 그걸 더 중요하게 다루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이제 낯설거나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이것은 우리가 쓰는 문구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역사 조차도 요즘은 전쟁광이나 왕이나 정치인들, 혹은 잘난 사람들의 역사를 여태 배웠다면, 최근엔 점점 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를 배우고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2015년도 이제 두달 밖에 안남았는데... 우리는 국정교과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심한 상황이지만, 사실 저는 검정도 그게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인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인간의 역사도 지금은 평범한 것이 더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의 역사도 흥미롭게 읽고 의복이라던가 부엌의 역사라던가... 이런것을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죠. 사실 아직은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온건 아닙니다. 예상하건데... 앞으로는 더 많은 책들이 나올꺼라 생각합니다. 여태 우리가 흥미를 느꼈던 역사나 이야기는 이제 지루해졌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어떤 기업이 어떤 문구를 개발했다, 이런것보다 더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볼펜을 가져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은행이나 관공서 이야기라던가, 수천가지 용도에 대해서 집요하게 제조사에 문의를 해서 답변을 받아낸 이야기라던가.. 이런 이야기가 좀 더 흥미롭더군요. 또 필자도 지적했듯이 요즘엔 대기업(혹은 글로벌 기업)이 점점 작은 기업을 인수해서 덩치가 켜지는 세태가 참 씁쓸하기도 합니다.

책은 어쩌면 문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롭지 않을 겁니다. 또 기업을 다루는 책들이 대부분 부풀려진 성공 신화를 떠벌리면서 기업가나 기업을 홍보하는 수단이 되거나 혹은 유치한 자기계발서 분위기라면 이 책은 적어도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서, 아마도 그런 책을 원하는 분에게만 맞지 않을것 같네요. 물론 이 책에서도 혁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긴 합니다. 어쨌든 문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겁니다. 저도 최근에 독서모임 책을 제외하고 가장 빨리 읽은 책이거든요.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에서 다루는 문구가 대부분 유럽과 미국의 문구들이라는 점이죠. 일본의 문구도 좀 나오긴 합니다. 물론 우리의 문구는 좀 빈약해서 세계에 이름을 떨친적이 없고... 사실 우리 문구를 사랑하자. 이런 유치한 말은 아니구요. 아무래도 어린 시절 쉽게 접했던 것은 국산 문구니깐요. 그런 이야기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니깐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우리 문구 전문가?가 혹시 있다고 해도 책 한권을 이렇게 전문적인? 내용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우리의 문구역사가 있는가? 이런 문제가 있긴 합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도판이 부족했다는 점.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구글링을 해서 문구 이미지를 찾아보곤 했습니다. 일러스트 몇점이 실려 있는데... 아무래도 글로 설명하는것 보다 사진이나 그림으로 된 도판을 더 많이 실어줬다면 좋았을꺼라 생각되네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1. 3.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