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빨강>과 관련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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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흐자드 <유수프의 유혹>, 1488

종이에 잉크와 물감, 30 x 22cm, 카이로 국립도서관

 

‘줄라이하’는 남편의 독실한 하인, 유수프(요셉)를 갈망했던 귀부인이다. ‘줄라이하’는 기능공을 고용하여 유수프를 유혹하기 위한 저택을 호화롭게 짓도록 했다. 그리고 계속 뒤에서 문을 닫으며 그 아름다운 청년을 저택의 방 안으로 유혹했다. 마침내 ‘줄라이하’가 그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순간, 신을 기억한 유수프는 신의 도움으로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 - 줄리언 벨 P.175

 

<코란>이 없어서 성경을 읽어봤는데, 성경은 약간 내용이 다르다. 좀 더 평범하달까.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복잡하고 화려한 집이나 하나씩 닫히는 신비한 문은 없고 그냥 요셉이 유혹을 뿌리치며 도망치다가 옷이 벗겨지는데 나중에 그 옷을 증거로 자신을 겁탈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나중에 서점가면 코란을 살펴봐야겠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그림을 뚫어지게 한번 쳐다보자굉장히 독특하지 않는가? 여러분은 지금 복잡하고 화려한 ‘보디발’의 아내(줄라이하)가 지은 집안을 들려다 보고 있다. 마치 신의 눈처럼 벽을 투사하고 복잡한 구조를 단순하게 해체해 놓은 평면을 쳐다보고 있다. 그 안에 극적인 사건과 마주한다. 남편이 총애하는 젊고 잘생긴 하인을 유혹하는 여인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듯 그를 붙잡고 있고 이제 막 그 젊은이(요셉)는 탈출을 하려는 순간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화가라고 가정해보자. 아니면 뭐 일러스트 작가라던가. 누가 이 복잡하고 신비한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했다고 치자. 어떻게 그려야 할까난감해지기 시작한다. 화려하고 복잡한 대저택을 그리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 불륜?극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줘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쯤에 터키의 한 화가는 정말 기묘하게 이 이야기를 해체 시키고 나서 다시 멋지게 결합해서 우리 앞에 내놓는다.

 

팩맨(Pac-Man), 1980, 남코가 제작한 게임

 

<팩맨>이란 게임을 살펴보자. 되게 단순한 게임이다. 갑자기 <팩맨>이냐? 하겠지만 보면 이 <팩맨>의 배경이 되는 곳은 아주 복잡한 미로 같은 건물이란 걸 알 수 있다. 벽이 엄청나게 많으며 긴 복도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적은 가운데 방에 모여 있다가 한 녀석씩 튀어나온다. 잘 관찰해보면 우리가 이 복잡한 건물을 위에서 쳐다본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팩맨’과 ‘악당 4종 세트’는 어떤가? 위에서 쳐다보는 모습일까? 아니다. 옆에서 쳐다보는 거다. 왜 이 게임은 일관성 없게 캐릭터를 위에서 쳐다본 모양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대답은 매우 단순하다. 화면을 보는 사람이 각각의 사물(건물과 ‘팩맨’, 악당)을 최대한 잘 파악할 수 있는 시선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그림은 우리가 이집트 그림을 볼 때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관련 포스팅 : 수천년간 이어지는 형식과 영감을 참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보통 이렇게 그린다. 사물을 관찰자가 보기 쉽게 하려고 원근법이나 투시법을 모두 무시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이가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그림 기술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단 그렇게 그리는 것이 관찰자에게 사물의 외형이나 그림 속에 이야기를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에게 그런 기술이 없기도 하다.)

 

우리가 본 <유수프의 유혹>은 이런 예보다 한층 더 복잡하며 기묘하다. 마치 어렸을 때 죨리 게임에 들어 있는 3차원 종이판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종이판은 건물을 평면으로 해체해 놓았지만, 조립을 하면 불안전한 입체로 재결합된다.

 

<유수프의 유혹>로 검색하면 딴 건 거의 없고 지겹게 <내 이름은 빨강>이란 책 제목이 검색되어 나온다. 별 내용도 없이 단순히 이 그림이 그 책의 표지로 쓰였다는 거 빼곤 아무런 정보가 없다. 물론 요셉의 유혹은 기독교에서 자주 다루는 것 같다. 뭐 코란에서처럼 신비한 부분은 없으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요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부인의 유혹은 사탄의 유혹과 동일시된다. 성경에서 이 유혹은 요셉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스스로 그 유혹을 이겨냈으며 코란에서처럼 신이 개입한 것은 아니다. (뭐 코란을 좀 읽어봐야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어쨌든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그림은 아래 그림인 <눈뜨는 양심>을 떠올리게 한다. 약간은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윌리엄 홀먼 헌트 <눈 뜨는 양심>, 1853년

컨버스에 오일, 76.2 X 55.9cm. 런던 데이트 미술관

 

창녀는 어느 날 창으로 들어온 눈부신 빛을 보고 양심에 눈을 뜬다는 다소 뻔한 그림인데, 재밌는 점은 왜 양심에 눈을 뜬다면 그녀를 무릎에 앉 남자가 떠야지 저 소녀가 뜨느냐 이 말이다. 물론 뭐 굳이 떠야 한다면 둘 다 떠야겠지만, 어쨌든 <유수프의 유혹>의 기묘하고 거대한 저택은 꼭 우리의 욕망과 닮은 구석이 많다. (<내 이름은 빨강>의 저자 '오르한 파묵'은 이 저택이 '인간의 욕망만큼 거대하다.'라고 말한다.) 그림은 신의 도움이든 아님 혼자서 지켜낸것이든 유수프(요셉)가 그 욕망을 이겨내는 장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그 번잡한 욕망을 헤매고 다닐 우리가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가?’하고 반문한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 31. 14:39